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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유적

면목동 구석기유적

면목동 구석기유적은 서울의 한강 유역에서 발굴 조사된 유일한 구석기유적이다. 아울러 한탄강의 전곡리 유적과 금강의 공주 석장리 유적과 대비되는 후기 구석기유적으로 서울 지역의 구석기 문화생활의 실체를 확인해 주고 있다. 위치는 중랑구 면목동의 아차산 서쪽 사면 끝 기슭으로 면목고등학교 인근의 산기슭에 해당된다. 유적의 앞쪽으로 중랑천을 배경으로 한 넓은 들판이 펼쳐 있어 구석기인들의 일시적인 생활거주지로 좋은 여건을 형성하고 있다.

유적은 면목지구 택지 건립을 위한 공사장 에서 1967년 황용훈을 비롯한 경희대박물관 팀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석기들이 약 30평 정도의 면적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택 건설 등 도시개발로 인하여 유적지가 모두 파괴되어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발굴된 석기는 대부분 몸돌석기로 외날찍개·양날찍개·찌르개·긁개·망치돌 등이 있고, 격지석기로 찌르개 옆날긁개·끝날긁개 등이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155번지에 있는 빗살무늬토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지.

  • 소재지 : 서울 강동구 암사동 155번지
  • 시대 : 신석기시대
  • 지정 : 사적 제267호

암사동 선사주거지는 두만강 하류, 대동강 하류, 낙동강 하류와 더불어 우리 나라 신석기문화의 4대 중심지의 하나이며, 인근에는 같은 시기 유적인 하남시 미사리 유적도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크게 파괴되어 다수의 토기편이 노출되면서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67년 전국대학연합조사단(고려대·경희대·숭실대·전남대)이 처음으로 발굴한 이후, 1971∼1975년 사이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집중적인 발굴과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20기에 가까운 수혈주거지(竪穴住居地)가 드러났다. 암사동 유적은 5개 지층(地層)으로 이루어져 제일 바닥층에 수혈주거지가 있는 선사시대 문화층, 그 위에 불모층, 제3층에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가 섞여 나오는 청동기문화층, 그 위에 백제문화층, 그리고 표토층으로 형성되었다.

그후 1979년 사적으로 지정 보호하기 시작하여 1980년 말에 신석기시대 취락지를 복원, 공원화계획을 추진하였다. 1984년에 서울대박물관의 발굴 결과 25개 주거지가 확인되고, 이미 발굴된 주거지 중 12기를 노출하여 선사취락지 복원작업을 실시하였다.
선사주거지는 사질토를 파고 들어간 수혈식 주거지로 그 규모는 대체로 한 변이 5∼6m이고, 깊이는 0.7m 내외이다. 그 평면구조는 원형인 3호 주거지 이외에 대부분 말각방형(네 귀퉁이를 없앤 사각형)을 취하고 있다. 중앙에 작은 강돌로 둘려진 화덕자리(爐址)가 있으며 출입구는 대체로 남쪽을 향하고 있다. 특히 6호 주거지는 출입구에 계단 형태를 보인다. 한 주거지에 4개 이상의 기둥구멍이 있으며 중앙에 중심기둥이 있었던 흔적이 있는 것도 있다. 한편 주거지 외곽에 자리잡은 저장공(貯藏孔)이 4개 확인되었으며, 이곳은 원형의 수혈로서 2단의 출입계단이 있다.

출토된 토기는 신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첨저형(尖底形) 빗살무늬토기가 90%를 차지하고 있다. 중간층(제3지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에서 민무늬토기시대에 걸치는 과도기적 양상을 띠고 있으며, 백제문화층에서는 삿무늬(짚으로 짠 자리 문양)가 있는 호형(壺形)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큰 옹관과 건물의 적심석이 발굴되었다.

또한 암사동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는 돌도끼·돌화살촉·어망추·갈돌(연석) 등이 있으며, 청동기 유물로는 방추차·청동촉·마제석부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고, 초기 백제의 유물로는 철제 자귀(도끼)와 철정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탄화(炭火) 도토리가 출토되어 채집경제를 살필 수 있으며, 새뼈·어골문 등으로 수렵과 어로생활이 경제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3000∼4000년 무렵의 문화유적이며, 그후 청동기 철기시대로 발전해 간 동일 지역의 문화상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오늘날 이곳에는 암사동유적전시관과 더불어 집터가 복원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신석기시대 움집을 가상 복원하고 당시의 실물 움집터를 볼 수 있게 하였다. 전시관 바닥에는 당시의 실물 움집터 8채와 1개의 저장구덩이가 있으며, 전시관 내 창가에는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 신석기 시대의 생활과 문화상을 헤아릴 수 있게 하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역삼동 주거지

역삼동 청동기유적은 한강 유역에 벼농사가 시작된 뒤의 전형적인 주거지이다. 화재로 인하여 유물이 원위치에 고스란히 보존된 상태에서 발굴 조사되어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 유적은 한강 지류의 하나인 양재천변 강남구 도곡동의 표고 90m 구릉 위에 위치한 무문토기시대의 거주지로 1966년 숭실대학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일대는 표고 100m 내외의 매봉 야산 줄기가 이리저리 뻗은 준평원으로 유적지에서 전방 약 10km에는 표고 544m의 청계산이, 동남방으로는 표고 283m의 구룡산이, 서쪽으로는 표고 290m의 우면산이 바라보이며, 북쪽으로는 3km 거리에 한강 넘어 남산과 북한산 줄기가 바라보인다. 유적이 위치한 구릉은 청계산과 우면산 사이를 흘러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양재천을 끼고 있다.

이 주거지는 길이 16m, 너비 3m, 깊이 50∼60cm 크기의 장방형 수혈식 주거지이다. 또 수혈 벽을 따라서 직경 10∼15cm, 깊이 10cm 내외의 기둥구멍이 1∼2m 간격으로 나 있었으며 그 중에는 참나무 기둥이 불탄 채 숯기둥으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수혈 중간 부분에서는 기둥구멍이 찾아지지 않으며, 또 화덕자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거주지의 실내면적은 약 12평(약 48㎡)으로 현대의 15∼16평 가옥에 해당되어, 일반 생활인의 가옥으로서는 상당히 큰 집으로 2∼3세대의 연립형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생활도구의 양으로 보아도 15∼16명의 가족이 생활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굴 유물은 석기로 석부 3점, 석촉 3점, 반월형 석도 1점 등 20여점과 토기로 복원이 가능한 심발형 공렬무문토기와 호형 무문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그 중 반월형 석도는 청동기시대 농경문화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유물이다. 토기는 이 유적을 대표하는 무문토기와 붉은간토기(紅陶)가 발굴되었는데 복원된 기형을 보면 옹형(甕形)과 호형(壺形)의 두 형태이다.

역삼동 주거지의 연대는 기원전 6∼7세기로 추정된다. 가락동 주거지보다는 약간 후대에 속하며, 명일동·수석리·아차산 주거지보다는 이른 시기의 유적이다. 일반적인 무문토기인의 주거지가 지름 6∼7m 규모의 원형 또는 방형 수혈주거지였다. 그런데 그 규모가 큰 역삼동 주거지는 핵가족 단위로 주거생활을 하던 씨족공동체사회가 사회분화가 일어나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출현하는 과도기적 주거공간으로 출현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들의 경제생활은 농경이었으며, 양재천의 어로와 인근 야산의 수렵도 가능하였다고 판단된다.

가락동 청동기유적

송파구 가락동 송파대로 동쪽 해발 40m 가량의 낮은 구릉 위에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1963년 고려대학교가 1기를, 1976년 잠실지구유적조사단이 5기를 발견하였다. 1963년 발굴된 유적은 장방형의 반움집터인데, 한강변에서 약 2∼2.5km 떨어져 있으며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산마루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당시 어로생활이나 수렵에는 불편한 위치이므로 주민들은 주로 밭농사나 벼농사에 의한 농업경제에 의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유적은 산마루 가까운 능선의 사면을 깎아서 만든 장방형의 반움집터로 길이는 동서 10m, 너비는 남북 7m이며, 깊이는 경사진 지면에 따라 10∼50cm이다. 이것은 본래 경사진 지면을 파서 평면을 만들었던 것으로 기둥구멍은 발견되지 않았다.

유물은 대체로 평면을 이루고 있는 동일층 위에서 출토되었으며, 다양한 석기와 토기가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중 화분형 토기는 서북한 지역의 팽이형 토기가 남한식으로 변형된 형태로 이것을 '가락식 토기'라는 명칭을 붙여 그 독특한 형태를 구별하고 있다. 가락식 토기는 북한의 전기 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남한의 초기 청동기문화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가락식 토기의 바탕 흙은 대개 진흙에 모래를 섞은 것이며, 화도는 낮고 색조는 적갈색 또는 황토색이다. 그리고 한강 이남 중부지방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와 비슷한 토기가 역삼동 유적, 여주 흔암리 유적 등에 서도 발견되어 중부지방 가락식 토기의 양상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돌낫의 존재는 역삼동과 흔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반달돌칼 등과 더불어 주민들의 농경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며, 대형 단지토기는 식량저장용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가락식 토기와 석기의 특징으로 보아 가락동 청동기유적의 연대는 무문토기의 편년에 따라 대체로 기원전 7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명일동 유적

강동구 명일동 유적은 청동기 후기의 주거지로 1961년 암사동 남쪽 해발 42m의 야산 사면에 위치하였다. 한 모서리가 6m 정도의 방형에 가까운 평면의 유적이며, 출토된 유물로서는 돌칼·돌화살촉·평저민무늬토기·숫돌이 있다. 돌칼은 홈이 있는 형식으로 기원전 3세기경의 유물로 추정된다.

석촌동 주거지

송파구 석촌동 주거지 유적은 잠실대교 건너편 한강 연안 충적 모래층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한강개발사업으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이 유적은 3개 문화층으로 형성되었는데, Ⅰ층에서는 조선자기편과 백제토기편이, Ⅱ층에서는 백제토기편이, Ⅲ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주거지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Ⅲ층에 놓여 있었는데, 초기 철기시대 주거지가 무너져 내려 신석기시대 층위에 놓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주거지는 지붕 시설만 밝혀졌으며, 하부구조는 4×3m 정도의 소형 주거지로 판단되고 있다.

『한강의 어제와 오늘 (서울시사편찬위원회 발간, 2001.10.)』 수록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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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일 201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