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사업본부 홈페이지 - 서울특별시

역사탐방프로그램 예약

수정일 | 2020-07-07

역사탐방프로그램 운영 중단 안내
2020년 5월 28일(목) 발표된 수도권 지역 대상 강화된 방역조치 시행에 따라
상황 안정 시까지
한강공원 내 이용시설을 휴관하고 프로그램 운영을 중단하니
시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적극 협조 바랍니다

 

동양화풍 한강의 지도

 

 한강의 역사를 찾아서(한강 역사탐방)

- 운영일정 : 2019. 4 ~ 11월, 월~일

- 운영시간 : 1일 2회 - 1회차 10~12시, 2회차 14~16시

- 휴 무 일 : 화요일(추석 등 장기연휴)

- 대      상 : 도보코스 누구나 참여가능(선상코스 학교단체)

- 탐방코스 : 13개코스(12개 도보코스, 1개 학교단체 대상 선상코스)

- 소요시간 : 평균 2시간

- 참가비 : 무료

- 접수방법 : 한강역사탐방 예약시스템(http://visit-hangang.seoul.kr)에서 온라인 접수

- 준비물 : 운동화와 편안한 옷차림, 물과 간단한 다과

- 기타 : 온 오프라인 설문조사 및 참여자 모니터링을 수시 운영하오니 많은 의견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제1코스: 경강의 시작, “광나루길” (소요시간: 2시간 30분)

① 광나루한강공원(안내센터) → ② 광진교8번가 1.0㎞ → ③ 광나루터 1.4㎞ → ④ 아차산 고구려역사문화홍보관 1.4㎞ → ⑤ 아차산성

  • 광진교8번가 : 광진교부터 광진정보화도서관, 광나루터를 잇는 광나루 낭만의 거리는 아름다운 한강을 조망할 수 있고, 광진교8번가는 세계적으로 3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교각아래에 있는 전망대로 차도와 자전거도로, 인도가 잘 갖추어져 있다. 마술공연, 로큰롤, 재즈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고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 광나루터 : 광나루는 한강의 중하류에 위치하여 교통 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백제가 북방 민족과 대치하면서 광나루는 군사 작전의 요충지였고 선진 문화를 수용하기 위한 외교 · 문화의 통로였다. 또한 신라가 발전하면서 불교문화가 이 나루터를 통해 수용되었고 철기문화가 이 나루를 통해 전해졌다. 조선시대에는 광나루에 관리를 두어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등지에서 서울로 운송되는 세곡을 관리·감독했다.
  • 아차산고구려역사문화홍보관 : 아차산 유적지와 관련된 패널, 항공사진, 중원고구려비 탁본 등이 있으며, 아차산에서 확인되는 토기와 기와류 등의 유물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또한 각종 고구려 유적 및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동영상 및 이미지 자료와 체험을 위한 복식과 관련 기자재도 구비하고 있다.
  • 아차산성 : 광진구에 위치한 아차산(해발 285m)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의 중앙에 쌓은 삼국시대 산성이다. 아차산성은 삼국이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진교 8번가 광나루터 아차산성

 

제2코스: 상업도시의 중심, “송파나루길” (소요시간: 2시간)

① 잠실한강공원(안내센터) 0.2㎞ → ② 잠실어도 1.3㎞ → ③ 잠실마루쉼터 0.8㎞ → ④ 서울 삼전도비 0.3㎞ → ⑤ 송파나루터 0.9㎞ → ⑥ 서울 석촌동 고분군

  • 잠실어도 : 잠실대교 밑에 자리한 ‘잠실어도’는 물고기들이 쉽게 강을 거슬러 오르도록 만든 물고기길이다. 물고기들이 산란기에 떼 지어 올라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물고기를 관찰하며 한강의 생태를 느낄 수 있어 잠실지구의 자랑거리다.
  • 잠실마루쉼터 : 한강 조망이 좋은 잠실대교 남단에 위치한 잠실마루쉼터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낮에는 한강어도를 볼 수 있으며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멋진 야경도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다.
  • 서울 삼전도비 :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인 1636년 인조임금이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쟁하다 결국 청나라 군대의 본영이 있던 삼전도로 나와 항복한 뒤 1639년에 세운 청 태종 공덕비이다. 이 비가 최초로 세워졌던 곳은 지금의 송파구 삼전도나루 근처였겠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재의 위치(송파구 잠실동 47번지)로 옮겨졌다.
  • 송파나루터 : 송파나루는 서울과 광주를 잇는 중요한 나루로, 잠실과의 사이를 왕복하고 땔나무와 담배 등을 서울에 공급하였다. 이곳에는 송파진의 군영이 있었으며, 조선시대 전국 10대 상설시장의 하나로 꼽힌 송파시장을 배경으로 번성하여 많은 물자들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교통요지였다.
  • 서울 석촌동 고분군 : 석촌동은 원래는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의 한 마을이었다. 이곳에는 예로부터 돌이 많았기에 ‘돌마리’ 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돌마리가 1914년 경기도 구역 확정에 따라 한자명으로 석촌리라고 불렸다가 1963년1월1일 서울시에 편입되어 석촌동이 되었다.
잠실어도 송파나루터 석촌동 고분군

 

제3코스: 목재의 집결지, “뚝섬나루길” (소요시간: 2시간)

① 뚝섬한강공원(안내센터) 0.8㎞ → ② 뚝섬전망문화콤플렉스 1.2㎞ → ③ 장미원 1.0㎞ → ④ 뚝섬나루 3.5㎞ → ⑤ 살곶이다리 0.5㎞ → ⑥ 전관원터

  • 뚝섬전망문화컴플렉스 : 몸은 가늘고 긴 원통형인 ‘자벌레’(자벌레나방의 애벌레) 형태의 길이 240m, 면적 1,931㎡ 규모의 전망문화공간이다. 총 4층으로 약 700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전망대와 옥외데크전시장, 시민휴식공간, 공연무대, 카페시설을 갖추고 있다.
  • 장미원 : 뚝섬한강공원의 숲속에 새롭게 단장된 6,040㎡규모의 장미원에는 40여종의 장미가 각양각색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유럽풍으로 꾸며진 장미정원은 비밀의 정원에 와 있는 듯한 신비로움을 주는 곳으로 뚝섬한강공원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뚝섬나루 : 뚝섬 나루터는 현재 광진구 자양동 강변에 있는 한강시민공원(과거 뚝섬유원지 혹은 뚝도유원지)에 있었던 나루터로 독백이라고도 불렸다. 경상도 · 강원도의 세곡 운송을 위해 이 나루터에 선착장을 두고 한강을 오가는 세곡선을 관리했다. 조선 후기에는 강원도에서 오는 목재가 하역되는 곳으로 변하여 나라에서는 관리를 파견하여 세금을 징수한 적도 있다.
  • 살곶이다리 :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다리 가운데 가장 긴 다리인 '살곶이다리'는 이 일대가 '살곶이벌'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데서 유래하였는데「한경식략」권량조에 보면 그 공식 명칭은 제반교라 하였다. 살곶이벌은 국왕의 군사대열장과 매사냥터로 이름이 났던 곳으로서 이 다리를 통해 태종과 순조가 모셔져 있는 헌인릉과 성종과 중종이 모셔진 선정릉에 갈 수 있어 국왕이 수시로 행차했다.
  • 전관원터 : 살곶이다리 근처에 나그네들이 묵어가던 여관으로 관영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이용하던 민영 숙박소였다. 전관원은 나루를 건넜으나 도성 문을 닫는 인정종이 울리기 전에 도성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된 나그네나 도성문이 울리는 시각보다 더 이른 새벽에 곧장 나루를 건너서 먼 시골까지 가려는 나그네들이 묵어가던 여관이었다.
뚝섬전망문화콤플렉스 살곶이다리 전관원터

 

제4코스: 백로가 노닐던 곳, “노들나루길” (소요시간: 2시간 30분)

① 이촌한강공원(안내센터) 0.5㎞ → ② 한강철교 0.5㎞ → ③ 한강인도교 0.9㎞ → 노들섬 1.6㎞ → ④ 노들나루 1.3㎞ → ⑤ 사육신묘 0.8㎞ → ⑥ 용양봉저정 0.8㎞ → ⑦ 효사정

  • 한강철교 : 1900년 7월에 완공된 한강철교는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다리로 3개의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6.25 한국전쟁 때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자 북한군의 빠른 진격을 저지하기위해 한강철교와 인도교를 폭파 하였다. 2006년에 "대한민국의 등록 문화재"로 지정 되었다.
  • 한강인도교 : 한강에 최초의 인도교가 놓여진 것은 한일합방 6년 뒤인 1916년이었고, 새 인도교는 1934년에 착공하여 1936년에 완공되었는데 폭 20m에 길이는 10,005m였다. 1925년 대홍수로 떠내려간 인도교는 1929년 다시 준공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폭파되는 수난도 겪었다. 복구된 다리는 쌍둥이다리가 되면서 한강대교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 노들섬 : 노들섬은 여의도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한강대교가 통과하고 있고, 대부분은 모래와 갈대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노들’은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이란 뜻이고, 지금의 노량진 주변을 의미한다고 한다. 1995년 ‘노들섬’으로 부르기 전에는 한강대교가 건설된 1917년 당시 다리의 중앙에 있던 모래언덕에 둑을 쌓으면서 ‘중지도(中之島)’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 노들나루 : 도성과 시흥 · 수원 방면 사이의 간선도로를 이어 주는 길목이다. 노들나루는 조선 전기에는 주로 민간인들이 왕래하였지만 조선 후기에는 국왕의 행차가 빈번하여 강을 건너는 방법이 모색되었다. 노들나루에도 한강나루, 삼전도에서와 같이 배다리가 놓이게 되었고, 정조는 이를 위하여 주교 절목을 만들어 보고하게 하였다.
  • 사육신묘 : 조선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희생된 70여 명 중 젊은 육신의 묘역이다. 사육신의 충절과 의기를 추모하여, 1691년(숙종 17) 이곳에 민절서원을 세우고, 1782년(정조 6)에는 신도비를 세웠다. 서울시는 1955년 그 자리에 육각의 사육신묘비를 세우고 1978년 정화해 사육신공원을 조성하였다. 원래 이곳에는 성삼문·박팽년·이개·유응부만 묻혔으나, 77∼78년 사육신묘역 정화사업 때 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 가묘도 추봉하였다.
  • 용양봉저정 : 동작구 본동 주민센터 뒤에 있는 용양봉저정은 정조15년(1791)에 지어진 행궁이다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의 참배길에 한강을 건넌 후 잠시 휴식하던 곳이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는 1789년 부친인 사도세자의 영우원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하고 자주 참배했다. 「용이 뛰놀고 봉황이 높이 난다」는 이름의 이 정자는 당시 한강을 건널 때 놓았던 배다리의 화려함을 잘 나타내주고 있으며 한강변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어버이를 섬기는 역사의 교훈이 되고 있다.
  • 효사정 : 효사정은 노량진 나루터 남쪽 언덕에 있던 조선초 공숙공 노한의 정자이다. 지금의 건물은 일본 신사 자리에 1993년 신축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노한이 모친상을 당하여 선영인 이곳에 모시고 무덤 옆에 초막을 치고 3년간 거상하고도 서러워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노한은 좌의정 민제의 사위로 태종과는 동서간이다. 16세에 음서로 등용되어 경기관찰사 한성부윤에 올랐고 1433년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노한의 아들 돈녕공의 친구인 대민공 강석덕이 <효사정>이란 정자이름을 지었고, 그 아들 강희맹이 정자의 내력인 기문을 지어 효사정의 참뜻을 밝혔다. 이 별장은 효도의 상징으로 유명했으며 한강을 끼고 있는 정자 중 경관이 제일 좋은 곳으로 칭송되었다.
한강철교 노들나루 효사정

 

제5코스: 새우젓내음 가득한, “서강나루길 ” (소요시간: 2시간)

① 망원한강공원(안내센터) 3.2㎞ → ② 서강나루 0.9㎞ → ③ 광흥창 0.4㎞ → ④ 공민왕사당 0.4㎞ → ⑤ 밤섬부군당

  • 서강나루 : 삼개 나루(용호·마호·서호)의 하나로 삼남 지방과 서해안으로 부터 곡물과 어물이 들어오던 나루터이다. 현재 마포구 신정동 강변에 있었던 포구로 일명 서호(西湖)라고도 하였다. 나루라기보다는 세곡선의 선착장이었다. 황해도, 전라도, 충청남도, 경기도의 세곡을 운반하는 조선(漕船)이 모두 이곳에 모였다.
  • 광흥창 : 와우산 동편 기슭 창전동에는 일찍이 조선초기부터 광흥창이라는 큰 창고가 있었다. 이곳 광흥창은 황해 · 평안 · 전라 · 충청 등 여러 도와 경기 연안에서 들어오는 공미를 모아서 쌓아 두던 곳이었다. 서해를 통해 한양에 닿은 배에서 곡물을 내려 저장했다가 관헌들의 녹봉을 지급하였다.
  • 공민왕사당 : 와우산 공원남쪽 아래 공민왕과 노국공주 그리고 충신 최영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다. 조선초 이곳 서강일대에 양곡창고를 지을 때 공민왕이 동네노인의 꿈에 니타나 당을 짓고 봉사하라 해서 신당을 짓고 매년 음력 10월 1일 자시에 제사를 성대히 지내왔다. 제사가 소홀하거나 부정한 일이 있으면 창고에 불이 나거나 재앙이 있어 제사에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 밤섬부군당 : 밤알 모양같이 생겼다하여 밤섬(栗島)이라 불리운 이 섬은 1968년 여의도 개발을 위해 섬을 폭파하여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현재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300여 년전부터 밤섬에서 지내오던 밤섬부군당도당굿은 서교동 뒷산인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 이주한 주민들이 부군당에 모여 지금도 매년 음력 1월 2일, 지역수호신인 부군신에게 나라와 국민의 안녕을 비는 제례를 올린다.
서강나루 광흥창터 공민왕사당

 

제6코스: 군사·문화·경제의 요충지, “양화나루길” (소요시간: 2시간)

① 망원한강공원(안내센터) 0.1㎞ → ② 망원정 1.7㎞ → ③ 양화나루 1.3㎞ → ④ 잠두봉 0.5㎞ → 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

  • 망원정 : 망원정 자리는 원래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이 세종 6년(1424)에 별서(別墅)를 마련하고 약간의 농사도 지으며 강상(江上)의 물결을 즐기던 곳이었다. 성종 15년(1484)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퇴락한 희우정을 효령대군으로부터 얻어 고쳐 짓자 성종이 '望遠亭(망원정)'으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 망원정은 정자에 오르면 멀리 산과 강을 잇는 경치를 잘 바라 볼 수 있음을 뜻한다. 1925년 큰 홍수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9년 10월에 복원되었다.
  • 양화나루 : 한강진, 삼전도와 더불어 조선조 3대 나루의 하나로서 도성에서 김포 강화로 이어지는 간선도로의 길목이다. 지리적으로 노량진 동작진 한강진 송파진과 함께 서울의 5대 주요한 나루터로서 인천과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해상 통로의 전진기지로서 서울의 관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곳은 경치가 아름다워 문인들의 발길이 잦았고 중국사신들이 오면 빼놓지 않고 다녀갔다고 한다.
  • 잠두봉 : 봉우리의 생긴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또 봉우리의 모양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해서 "용두봉"(龍頭峰)이라고도 하였고, 예로부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중국에까지 이름난 곳이었다. 조선시대에 정부 고관들도 한강에 배를 띄워 용산 마포의 강류를 따라 잠두봉 앞에 이르면 그 봉우리에 올라가 하루를 즐기곤 했다. 지금은 천주교 순교사적지가 있다.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으로 선교 개척활동을 전개한 알렌과 언더우드가 양화진 언덕을 묘지로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아 이곳에 헤론을 처음으로 안장하면서 지금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이 자리 잡게 되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 145명이 안장되어 있다.
망원정 양화나루 잠두봉

 

제7코스: 신선이 놀았던 곳, “선유도길” (소요시간: 2시간)

① 선유도한강공원(안내센터) → ② 환경놀이마당(4개 원형공간) → ③ 시간의 정원 → ④ 수생식물원 → ⑤ 녹색 기둥의 정원 → ⑥ 환경 물놀이터 → ⑦ 수질정화원 → ⑧ 온실

  • 네 개의 원형공간 : 원형은 그대로 둔 채 내부 공간이 원형극장·환경놀이마당·환경교실·화장실로 이용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구조물을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는지 좋은 사례가 된다.
  • 시간의 정원 : 시간의 정원은 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서 다양한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수로를 재활용한 상부의 데크(목재마루가 깔린 산책로)를 지날 때는 정원을 전체적으로 내려다보며 나무 사이를 걸어 다니는 느낌으로 키 큰 나무의 가지와 열매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 수생식물원 : 정수장의 여과지 지붕을 걷어내고, 4개의 독립된 수조를 만들어 재활용한 수생식물원은 낮은 수반에 자리 잡은 다양한 수생식물의 모습과 생장과정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 녹색기둥의 정원 : 정수장의 제 1 정수장으로 쓰이던 곳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고 기둥만을 남긴 정원.
  • 환경물놀이터 : 수질 정화원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개울처럼 흐르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물놀이 공간으로 만든 곳.
  • 수질 정화원 : 약품침전지를 재활용한 수질정화원은 물을 정화하는 여러 수생식물의 생장과 정화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 온실

 

제8코스: 형제투금설화가 전해오는, “공암나루길” (소요시간: 2시간)

① 강서한강공원(안내센터) → ② 공암나루 → ③ 광주바위 → ④ 허가바위 → ⑤ 허준박물관

  • 공암나루 : 현재의 강서구 개화동 강변에 있었던 나루로서, 강 건너 고양시 내 · 외동의 행주나루와 마주하고 있다. 일명 공암도, 공총(孔叢), 구멍바위나루라고도 하였다. 양화도(楊花渡) 나루와 더불어 양천 · 강화에서 도성으로 통하는 길목으로서, 일찍부터 개설된 나루이기는 하지만 선객이 붐비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사선(私船)만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있어서 관에서 진선(津船) 5척을 배치하였고 양화도 별장의 지휘를 받았다.
  • 광주바위 : 가양2동 공암나루에 서 있는 바위가 광주바위이다. 높이 12m의 세 덩어리로 이루어진 이 바위는 광제(廣濟) 바위 또는 광주(廣州)바위라고 한다. 광제바위는 너른 나루에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한강의 물길을 장악하고 있을 때 이곳을 공암나루라 한 것으로 광주바위라 하는 것은 광제바위가 잘못 전해져서 얻은 이름이라 추측된다.
  • 허가바위 : 허준길 69-3번지(가양동 26-28 영등포공고 정문 앞)에 있는 허가바위는 탑산 아래 천연 바위 동굴이다. 허가바위는 겸재의 그림 「소요정」에서도 볼 수 있는데 허가바위 근처 강물에 거룻배 한 척이 떠 있고 삿갓 쓴 어부 두 명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태평하게 앉아있는 풍광이 돋보인다.
  • 허준박물관 : 허준박물관은 허준선생의 다양한 자료 뿐 아니라 모형, 영상, 터치스크린, 허준체험 공간 등이 있어 한의학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한의학 전문 박물관이다. 이곳은 234종의 한방 관련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단순히 보는 박물관이 아닌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한방 음식전, 한방약재공예작품전, 약초표본전 등을 열어 한의학을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공암나루 허가바위 허준박물관

 

제9코스: 겸재가 바라본 한강, “겸재정선길” (소요시간: 2시간)

① 강서한강공원(안내센터) 3.6㎞(차량) → ② 양천향교 0.3㎞ →③ 소악루 0.4㎞ → ④ 겸재정선기념관

  • 양천향교 : 양천향교는 양지바른 궁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시기념물 제8호인 양천향교는 전국 234개 향교 중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향교이다. 조선조 태종 11년(1411)에 처음 지었으며, 노후 된 것을 지난 1981년 전면 복원했고 최근에는 2008년 5월 동재와 서재의 기둥이 훼손되어 2차 보수를 했다.
  • 소악루 : 조선 영조 때 동복 현감을 지낸 이유가 양천 현아 뒷산 기슭 강변 악양루터에 재건한 것으로, 당시 이 누각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등이 한눈에 보이고 탑산, 선유봉 및 드넓은 한강 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진경이 펼쳐졌다 한다. 조관빈, 윤봉구, 이병연 등 당대 명사들이 이곳을 찾았으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현령으로 있을 적에 그린 산수화 <경교명승첩>을 통해 당시 경관을 엿볼 수 있다. 소악루의 원위치는 정선이 그린 소악루, 소악후월 등의 그림으로 짐작해 볼 때, 강서구 가양동 산6-4(일명 세숫대바위) 근처로 추정되나 주변의 변화가 심해 한강변 경관 조성과 조망을 고려해 현 위치에 1994년 신축했다 한다.
  • 겸재정선기념관 :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은 한국 산수의 고유한 미감을 살린 진경산수화라는 독자적 화풍을 구축했으며 말년에 양천현령(현재의 강서구청장 격)을 지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정선은 양천현령(현 강서구)으로 있으면서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 서울과 한강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특히 한강변의 옛 강서 모습인 이수정(二水亭), 소요정, 개화사, 양천현아, 종해청조, 공평층탑, 설평기려, 소악후월, 소악루 등의 작품이 전한다.
양천향교 소악루 겸재정선기념관

 

제10코스: 배 타고 떠나는, “한강 옛 나루터길” (소요시간: 1시간)

본 프로그램은 토요일 10시~12시 사이에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초, 중, 고 학교 단위의 단체 신청만 가능하며, 일반 개인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
신청 문의 : 수상안전과 (☎ 02-3780-0829)

한강사업본부 선박이용신청서, 승선신고서, 한강공원 이용시설 사용료 감면 신청서(다운로드)

① 여의도 → ② 반포→ ③ 선유도 → ④ 여의도

  • 한강의 나루 : 서울이 근대화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지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한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배를 이용하였다. 오늘날은 다리가 건설되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반드시 배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강의 여러 곳에 나루가 생겨나게 되었다. 당시 나루를 설치한 근본적인 목적은 사람의 왕래를 위한 교통로, 물자의 운반을 위한 수송로,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위한 초소로서의 기능에 있다.
    이들 나루의 도선장인 나루터를 오가며 사람과 물자를 건네주는 나룻배는 한강 양쪽의 통로를 이어주는 최대의 편의시설이자 유일한 교통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강의 나룻배는 1970년대 이후 강위에 많은 다리가 개통됨에 따라 점차 그 자취를 감추어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 갔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오늘날 많은 다리들이 생겨나면서 나루가 사라졌지만 놓여진 다리의 위치가 대부분 조선시대 나루가 있었던 곳이라는 점이다.
  • 한강진나루 : 조선시대 한강나루의 풍경은 조선시대 제1의 도선장으로 옛날에는 '한강도'라고 하였으며, 신라 때는 '북독'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사평도' 또는 '사리진' 이라고 하여 중요한 나루터로 지목되었으며, 서울에서 용산, 충주로 통하는 큰 길의 요충지였다. 예전에는 서울의 남산 남쪽기슭인 지금의 한남동 앞의 강을 한강이라 하였고, 이곳의 나루를 한강도라 하였다. 오늘날 한강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시점에서부터 물줄기의 끝까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한강이라 하였다. 도성에서 남소문을 나서면 바로 한남동의 한강마을이었기 때문에 수도 방위상 매우 중요한 곳으로 일찍부터 별감을 파견하여 사람들의 통행을 감시하고 통행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조선후기에는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점이어서 이곳에 진을 설치하여 관리하였다.
  • 노들나루 : 노량진에서부터 양화진까지는 버드나무가 많았으며 특히 노량진에는 백로들이 많이 날아와 '노들' 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00년 한강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교가 이곳에 건설되었다. 이 길목은 시흥, 수원은 물론 충청도 전라도로 통하는 대로로서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지금은 큰 다리가 놓이고 노량나루가 있던 지점에는 노량진수원지가 자리 잡고 있어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다. 상류의 광나루와 함께 별감이 배치되어 서울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살피게 하고 군사를 주둔시켰던 나루로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다. 일명 '노도' '노량진' '나들나루'라 불리었으며, 연산군 때는 이곳의 나루만을 통행하도록 하고 나머지 한강의 모든 나루를 봉쇄하기도 하였다.
  • 마포나루 : 도성 서쪽 10리 지점에 있었던 나루로서 일명 삼개나루라 불렀다. 오늘날 마포대교 북쪽 방면으로 반대쪽의 여의도는 예전에 백사장이었다. 백사장을 지나면 시흥을 거쳐 수원으로 가는 길이 된다. 도선장에는 주로 상선들이 운집하였으며, 나룻배도 사선 중심이었다. 옛 부터 마포나루에는 새우젓을 파는 사람들이 많아 마포 새우젓 장사라는 애칭이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 양화나루 :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지역의 한강 북안에 있었던 나루터이다. '양화도'라고도 하였으며 서울에서 양천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조선 초기 바닷물이 용산까지 밀려와 한때는 용산이 으뜸가는 나루였으나 염창의 모래언덕이 조수의 침입을 받아 허물어지고 점차 한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큰 배가 용산까지 직접 못 들어오자 양화진이 중요하게 되어 크게 번창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나루는 경상, 전라, 충청, 경기도에서 올라오는 곡물을 서강 광흥창까지 운반하는 조운 포구로서 농산물의 재분배를 담당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고려 이래로 양천, 강화를 가려면 반드시 이곳 양화나루를 건너야 했으며, 조선 영조 이후에는 송파진, 한강진과 함께 한강의 삼대 관방으로 요충지였다. 따라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일찍이 어영청에 소속되어 10여척의 배를 가지고 순시하였으며, 진을 구축하여 관리들이 파견되어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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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9-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