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선교사 묘원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7번 출구로 나와 200m쯤 걸어가면 조용한 공원이 하나 나옵니다.  
이곳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입니다. (※묘원: 공원처럼 꾸며 놓은 공동묘지) 
이 묘원에는 417명의 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영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비석 하나가 눈에 띕니다.  
겨우 37살의 나이에 죽은 영국인 기자, 베델의 묘비입니다.

1905년 11월 21일 경성 대한매일신보 사무실, 백인 청년이 타자기로 기사를 치고 있습니다.
그는 영국인 기자 베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특파원으로 왔다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습니다.

‘일본은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그러나 을사늑약은 조선의 왕이 승인하지 않았으므로 무효다. 전 세계는 더 이상 이런 일본의 무도한 침략행위에 눈 감아서는 안된다.’

사실 베델의 조국 영국은 일본 편에 서 있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에서 벌이는 행위를 눈감아주는 대신 러시아의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를 얻기로 했거든요  
따라서 베델 역시 조선보다 일본에 우호적인 기사를 써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난 기자야, 영국인이기 전에 인간이야. 인간으로서 기자로서 조선의 상황을 묵과할 수 없어"

베델은 지속적으로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당연히 일제는 베델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일본의 간계로 베델은 재판에 회부됐고 상해로 이송돼 금고형을 살았습니다. 

이후로도 끊임없는 자금 압박과 정치적 박해에 시달리던 그는 1909년 37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양화진 묘역에 묻혔습니다.  
이듬해 민족운동가들은 베델의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그러자 일제는 칼과 망치로 추모비의 글을 지워버렸습니다.

그후 광복을 맞이하고 1964년에 이르러서야 언론인들이 성금을 모아 베델의 묘에 새 비석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베델의 묘를 지키고 있는 비석입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는 또 다른 묘비가 있습니다.  
그 묘비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빅토리아풍의 신사 호보 헐버트 이곳에 잠들다'

호모 헐버트 박사.   
그는 1886년 선교활동을 위해 조선에 왔습니다.  
그랬다가 강제로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해 조선의 주권을 빼았는 것을 보고 미국으로 달려갔습니다.  
미국 정부에게 조선을 도와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미국 정부는 냉랭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조선에 관여할 생각도, 이유도 없습니다."  
"미국과 조선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습니다. 조선과 미국 어느 쪽이 외교적 어려움에 봉착하면 다른 한쪽이 도와주기로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잊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약속을 어기면 조선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이 미국이란 말인가? 이것이 내 조국이란 말인가'

헐버트는 참담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종을 설득해 헤이그 만국평화 회의에 밀사를 보내게 했습니다.  
1907년 이위종, 이상설, 이준이 헤이그에 밀사로 갔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간계로 이들은 회의장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이준 열사는 헤이그에서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헐버트, 저 방해꾼을 치워버리지 않으면 우리 대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데 상당한 애로가 있다. 당장 추방해"

결국 헐버트는 일제에 의해 조선에서 영구 추방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는 국제사회에 조선의 실상과 일본의 만행을 알렸습니다.  
어느 조선인보다 더 뜨겁게 조선 독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45년 8월 15일 조선은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그날 헐버트도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누구보다 크게, 누구보다 뜨겁네!

그리고 194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영구 추방당한지 40여 년만의 일입니다.  
당시 헐버트는 85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한국으로 떠나던 날,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님, 한국을 다시 방문하시게 된 감회가 어떠신지요?"  
"저는 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웨스트민스터사원,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이 안장되는 곳.  
그러나  헐버트 박사는 그곳보다도 한국에 묻히고 싶어 했습니다.

드디어 한국땅을 밝은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벽안의 노신사가 서툰 발음으로 아리랑을 부르자 모여둔 정부 각료들과 기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헐버트 박사는 그렇게 그리워하던 한국땅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이곳 양화진 묘원에 묻혔습니다. 
생전 그의 바람대로 한국땅에 잠들게 된 것입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는 우리보다 더 우리나라를 사랑한 외국인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들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그 고마운 친구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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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
2023-01-24
등록일 :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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