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사업본부 홈페이지 - 서울특별시

검색창 열기
등록글 검색

역사유적 11 - 20

11. 밤섬

여의도에 인접해 있는 섬. 고려초기에는 귀양지였으나, 뛰어난 풍치를 지녀 시인 묵객들이 마포 강변에서 밤섬을 노래하며 정취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마을이 있어 뽕나무와 감초를 재배했고 양과 염소를 놓아 기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8년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면서 이곳의 흙이 여의도 윤중제 공사 등에 모두 투입되었으며, 철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한강 최대의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12. 토정터

마포대교 북쪽 한강변 유수지 옆의 토정동에 조선시대 역학자 토정 이지함이 흙으로 100척이나 되는 움집을 짓고 살았던 곳. <토정비결> 로 유명한 그는 여러 학문에 통달하였고 이를 실제 생활과 연결하려 했다. 수많은 일화와 가담에서 그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13. 새남터 순교성지

조선시대 죄인을 처형하던 터로 이촌동 199번지 일대 새남터는 모래사장이었다. 조선말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때 외국인 선교사들과 한국인 신자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한국 천주교에서 이곳을 순교기념지로 지정하고, 기념탑과 새남터 순교기념 대성전을 세워 놓았다.

14. 사육신묘

동작구 노량진동 185-2번지의 한강을 굽어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이던 단종을 내쫓고 임금이 되자 여섯 신하가 목숨을 걸고 이를 반대하다 끝내 참수를 당하였다. 서울시는 1978년에 이들의 충성된 마음을 기리기 위해 성역으로 지정하여 공원으로 꾸몄다.

15. 노량진 나루터

한강대교가 놓인곳에 있었던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던 나루터, 노량진에서부터 양화진까지는 버드나무가 많았으며, 특히 노량진에는 백로들이 많이 날아와 노들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곳에는 1900년에 한강 최초의 다리가 건설되었으며 시흥·수원은 물론 충청도, 전라도로 통하는 대로의 길목이었다. 노량나루가 있던 지점에는 수원지가 있어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상류의 광나루와 함깨 별감이 배치되어 서울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살피게 하고 군사를 주둔시키던 나루로서 서해안의 각종 어물과 물산이 부려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던 곳이다.

  • 위치 : 동작구 본동 제1한강철교 남단 부근
16. 이태원터

조선시대 관리나 길손이 머물 수 있던 숙소. 이태원은 고려시대부터 지방 유지가 나라에서 땅을 얻어 운영하던 여관지였다. 이곳이 외국인 거주지의 특색을 띄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 투항한 일본인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이타인이라하고, 운종사에서 혼혈아를 보육하였으므로 이태원이라고 하였다. 광복 이후 우리 나라에 진주했던 미군들이 이곳에 모여살았고 1956년 이후 외국인촌으로 지정된 것도 이런 유래에 따른다. 이태원은 현재 외국인을 대상으로 보세상품과 한국의 민속상품 등을 판매하고 있어 서울에 온 외국사람이면 반드시 한번쯤 들러보는 명소로 인기가 높다.

17. 동빙고터

성동구 옥수동 8번지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얼음저장고로 겨울이 되어 한강이 얼면 얼음을 떠다 저장하였다가 이듬해 여름 종묘와 사직단 등의 제사에 썼다고 한다. 얼음을 뜨거나 얼음 창고를 짓고 관리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얼음을 저장하는 방법은 지금의 학자들도 놀랄 만큼 과학적이었다고 한다.

  • 위치 : 성동구 옥수동 8번지
18. 잠실 뽕나무밭터

지금의 잠원동이란 지명은 신잠실(新蠶室)로 불리우던 곳으로 조선초 성종 때 누에치기를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밭을 만들었던 곳. 현재 서울시 기념물 제1호로 북벌에 필요한 활을 만들었고, 근세에는 수출용 실크의 원재로 활용하였다.

19. 제천정터

조선시대 정자터로 한강변의 절경지. 한남동과 보광동을 가르면서 남으로 뻗은 남산의 한 능선이 한강 물가에 이르러 멈춘 한남동 537번지에 제천정이 있었다. 조선조의 명재상 퇴계 이황이 벼슬을 내놓고 한양을 떠날 때 송강 정철이 여기에 올라 그리운 심정을 노래했다고 한다. 고려 때부터 한강루, 한강정이라 불리우던 작은 정자로 조선 초에 중국 사신을 위해 주연(酒宴)을 베풀던 장소이기도 했는데 성종때 크게 고쳐 짓고 『제천정』라 하였다. "이괄의 난" 때 인조가 공주로 피난하는 길에 이 정자를 태워 그 불빛으로 무사히 건넜다고 한다.

20. 한강진 나루터

한남동과 건너편 사평(沙平) 나루를 잇던 나루터로 예전에는 남산 남쪽 기슭과 맞닿은 한남동 앞만을 "한강"이라 하였다. 용산구 한남동 557번지에 있었던 한강진은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검문하던 곳이었다. 서울의 남쪽 길목을 지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영조 때에는 군사상 요충지로 여겨 군사를 배치하기도 하였다.

  • 위치 : 용산구 한남동 524-3번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 담당부서 한강사업본부 - 총무부 - 문화홍보과
  • 문의 02-3780-0763
  • 수정일 2019-03-14